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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지역언론연대] 영화 '무명'의 일본과 역사 왜곡의 일본 사이에서
2025.07.16

영화 무명 (감독 유진주/2025 개봉) | 출처 CGN 갤러리

2025년 7월, 일본 정부는 또다시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명기한 교과서를 확정 발표하며 역사 왜곡을 반복했다. 21년 연속 자국 방위백서에 “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적시했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독도에 대한 기술 외에도 위안부 강제성 표현을 삭제하고, 강제 징용이라는 용어를 ‘동원’으로 순화하는 등 전반적인 침묵과 왜곡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정부가 국가 단위로 자행하는 체계적 망각의 전략이며, 침략과 가해의 역사를 무화시키려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다. 20세기 제국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현 일본 정부의 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은 어떠해야할까?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은 저급한 상대에 대해선 "When they go low, we go high"로 맞받아쳐야 한다고 했다. 광명정대(光明正大)한 군자대도(君子大道)의 자세로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대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잃어가는 그들의 고귀함을 상기시켜주면 된다.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은 미워합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일본도 미워합니다. 하지만 노리마츠 마사야스의 일본은 좋아합니다.” 당시 조선을 너무나 사랑했던 일본인들이 있다.  그들의 삶이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을 통해 대중에 알려졌다. MZ 세대인 유진주 감독(39)이 연출하고 하정우 배우가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이 작품은 이름 없는 두 명의 일본인 선교사, 오다 나라지(織田楢次)와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의 실화를 조명하며,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에 조선을 사랑했던 일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내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일본을 모두 미워해야만 하는가.” 

일본인 순사에게 고문 받는 일본인 선교사 | 출처 CGN 영화 갤러리
 
영화 <무명>은 말 그대로 '이름 없는(namelss)' 이들의 이야기다.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조선을 침략했던 나라, 민족의 뿌리를 짓밟고 신앙까지 탄압했던 식민 제국 일본의 그늘 속에서, 놀랍게도 조선의 고통을 공감하고, 스스로 그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간 순도 100% 일본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또, 이들의 숭고한 섬김이 어느 독립운동가가 성장하는 씨앗이 됐다는 것을.

영화에선 두 명의 일본인 선교사를 소개한다. 그 중 첫번째 주인공은 노리마츠 마사야스 선교사다. 19세기 말,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접한 그는 가나가와현(요코하마 시) 내 공무원 신분이었음에도 기독교적 양심에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홀홀단신 조선으로 향했다. "예수께서 지금 조선 땅에 오셨다면, 분명 조선 민중과 함께하셨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고, 정말 빈자의 예수님 모습으로 조선인 삶으로 들어가 동고동락했다.

한편 그 고귀한 삶에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다. 오히려 결과는 비참했다. 노리마츠 부인은 30대 젊은 나이에 영양결핍 폐결핵으로 조선땅에서 숨을 거뒀다. 1896년 첫 내한 후 18년 간 활동해온 노리마츠 선교사 본인도 결국 병을 얻어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말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은 미워합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일본도 미워합니다.
하지만 노리마츠 마사야스의 일본은 좋아합니다.”

그의 죽음 이후 수원 동신교회 한 켠에 세워진 추모비는, 해방 이후에도 조선인들이 손대지 않은 유일한 일본인의 비석이 되었다.

수원 동신교회를 세운 노리마츠 마사야스 일본인 선교사 | 출처 CGN 영화 갤러리
 

한 알의 밀 알은 누군가 꽃 피우는 거름이 되고
극 중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오다 나라지 선교사다. 교토 출생으로 불교 집안의 뜻을 거스르고 기독교로 개종한 그는 1930년대 조선으로 파송되었다. 당시 일본은 조선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신사참배는 종교행위가 아닌 국가의식’이라며 교묘한 논리를 들이밀었다. 조선총독부는 1933년 발간된 '조선의 통치와 기독교(朝鮮の統治と基督敎)'에 드러나듯이 한반도 종교를 내선일체(內鮮一體) 민족말살정책으로 적극 활용중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평양 감리교회 건축 지원금과 매년 중앙기독교청년회에 기부해온 것은 유명한 일화다.  

수많은 교회가 이에 굴복했다. 신사참배 거부는 곧 교회의 문을 닫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 오다 나라지 선교사는 조선의 강단에서 이렇게 외쳤다. “신사참배는 예수의 복음과 양립할 수 없는 우상숭배다. 조선을 침략한 일본인에게 절하는 행위다”

그의 발언은 국경을 뛰어넘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양심적인 고백이었다. 그렇게 오다 선교사는 다섯 번 감옥에 갇히고 고문당했다. 그는 끝내 본국으로 추방됐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억압과 무시받던  조선인들 편에 서서 목회활동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의 설교에 감화되어 독립운동에 투신한 조선 청년이 있다. 훗날 목사가 된 박중학 청년은 야학 개설 후 계몽운동을 전개하며 일제 만행을 꾸준히 폭로해왔다. 극심한 전기고문으로 손에 감각을 상실하기까지 한 그는 훗날 문재인 정부에 의해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다. 일본인 선교사의 숭고한 희생이 독립운동가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신사참배 거부를 선포한 오다 나라지 일본인 선교사 | 출처 CGN 영화 갤러리
 

분노와 은혜 사이, <무명>이 던지는 통찰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감동적인 실화에 있지 않다. <무명>은 “(조선 당시) 모든 일본인은 적이다”라는 감정적 분노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적 가운데서도 이웃이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조명한다. 그들이 보여준 양심과 헌신은, 오늘날 우리가 일본의 왜곡에 맞서 싸우는 방식에 새로운 차원을 던진다. 그 싸움은 감정이 아니라 진실 위에 서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진실은 때때로 ‘일본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 우리 한반도와 ‘함께 고통받아온 일본인들’에 의해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명>은 상업영화가 아니다. 다큐멘터리다. 흥행을 노리지 않고, 교회를 배경으로 한 비주류 영화이지만,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중략) 계승하고'라는 문구를 명확히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한국 사회 전체에 울림을 준다. 

‘진정한 신앙이란 무엇인가?’
‘이웃이란 누구인가?’
‘국경과 민족을 넘어선 사랑은 가능한가?’

이 영화는, 이 질문들에 계속 곱씹어보게 한다.

'무명 속 양심적 일본인, 희망 근거가 되다
지금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교과서에 실려 청소년들에게 주입되고, 국제사회에 ‘일본의 공식 입장’으로 전파된다. 동시에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사실마저도 ‘자발적 동원’이라는 왜곡된 표현으로 바뀌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무명>에 등장한 일본인 선교사들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이 영화는 일본이 과거에 얼마나 계회적으로 잔혹했는지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 속에서도 정의를 위해 싸운 양심적 일본인의 존재를 통해, 얼어붙은 한일관계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되찾게 만든다. 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다시 진실 앞에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뜻하며, 역량을 갖춘 한국 정부는 그 가능성을 외교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단절이 아니라 해석의 연속이다. 우리가 일본을 비판하는 이유는 과거에 갇히기 위함이 아니라, 미래를 정의롭고 온전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해온 보여주기식의 ‘항의 성명, 대사 초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 내 양심적 시민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역사 왜곡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결집하는 것이다. 또한 민간 부문에서도 제대로된 역사교육을 통해 일본을 ‘구분해서’ 볼 수 있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

출처 : 바른지역언론연대(http://www.bjynews.com)

필자 주:
영화 <무명(無名)>은 롯데시네마를 통해 상영 중이다. 한일 간 역사적 책임과 용서, 화해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